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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상사의 가스 라이팅. 그 끔찍한 기억.

저는 10년넘게 직장 생활을 했고 나름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법한 회사를 다녔습니다. 10년 넘은 직장 생활 동안 꽤 여러 명의 팀장님들을 만났었고 그중에는 존경하고 따르고 싶은 분도 있었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분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스쳐간 여러 팀장님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아니러니 하게도 제가 가장 견디기 힘든 2년 동안의 직장생활을 하며 제 위에 있었던 팀장입니다. (님자를 붙이고 싶지도 않네요.)

요즘은 가스라이팅이란 말이 흔하게 사용되지만 제가 그분 아래 있었던 시절만 해도 (뭐 그리 오래 전도 아닙니다만)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도, 주 40시간 근무제도도, 가스 라이팅이란 단어도 없던 시절입니다.

야근을 오래 하는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가지고 일하던 팀장. 그 팀에 속한 죄로 2년 가까이 매일 야근을 하며 살았습니다.매일 야근을 할 만큼 그리 일이 많았냐?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회사의 대표가 밤 10시~11시 사이에 누가 남아 있나 순찰을 돌곤 했는데 팀장님은 우리 팀은 전원 자리에 앉아서 대표가 순찰을 돌 때 "이 팀은 정말 일을 밤낮없이 열심히 하네"라는 칭찬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동료들은 야근을 하면서 딱히 할 일이 없어도 자리를 지켜야 했고 팀장님은 다른 팀에게 "우리 팀은 애들이 너무 열정적이라 자발적으로 야근을 한다"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매일 밤 퇴근은 11시를 넘었습니다. 야근 수당도 따로 없었던 회사 그나마 10시 넘어 퇴근을 하면 택시비를 주었기에 주야장천 택시를 타고 집에 갔었네요. 어느 날은 집에 도착하니 새벽 30분. 그다음 날 또 야근을 해서 집에 도착하니 11시 30분이어서 하루에 법인 택시를 왜 2번 탔냐고 불려 갔던 적도 있었습니다. (왜 냐니 다음날 퇴근했으니 그렇지요!)

당시의 팀장은 참으로 기분파였고 신경질적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사람이 팀장이 되었지? 싶은데 그 기분과 신경질에 나를 끼워 맞추지 않으면 회사에서 매일 자리에서서 전 직원이 보는 앞에서 혼나야 했고 회의실에서 버럭버럭 소리 지르고 삿대질을 당하는 건 예사였습니다. 평화롭게 회사 생활을 하고 싶다면 그저 그녀가 원하는 것을 모두 맞춰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로 의지하면서 지냈던 직장동료와 밤 11시에 퇴근하면서 한시간이 넘는 길을 걸은 적도 있습니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앉아 있으니 온몸이 굳는 것 같아 그나마 걸을 수 있는 시간은 그 시간이 전부였습니다. 운동도 전혀 할 수 없고 팀장은 잠깐도 자리를 뜨는 걸 용납하지 않았기에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회사에선 오로지 모니터만 바라봐야 하는 날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 생활을 지속하면 자연스럽게 건강이 나빠집니다. 늘 수면부족과 만성피로에 시달렸고 회사에선 늘 신경이 날카로워졌습니다. 늘 머리가 멍해서 회사에 출근하는것외에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오늘은 팀장이 짜증 좀 안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 팀 종료와 내가, 우리가 왜 이러고 있을까?라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었습니다. 무기력하고 힘들고 슬프고 화나는 그 생활을 2년 넘게 했던 이유는 뭐였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우리팀은 집단으로 가스 라이팅을 당한 것입니다. 팀장은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그 아래서 그 누구도 이탈할 수 없고 다른 생각도 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어 이직을 생각하지 않은 게 아니지만 이직도 이력서를 쓰고 회사를 알아볼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겁니다. 매일 새벽에 집에 도착해서 쓰러져 자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이력서를 쓸 시간 자체가 없습니다. 연차도 마음껏 못쓰는 팀에서 이력서를 쓴다 해도 면접을 보러 갈 시간을 빼는 것도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 지옥 같은 시간은 팀장이 다른 팀의 팀장으로 발령 나면서 끝이 났습니다.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낸 나에게는 뭐가 남았을까요? 꽤 큰 트라우마가 남았습니다. 지금도 길을 가다 그때 그 팀장과 비슷한 실루엣을 만나면 온몸이 굳는 것 같습니다. 혹여나 나를 알아볼까 봐 마주치기도 인사하기도 싫어서 가던 길을 멈추고 비슷한 실루엣의 움직임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바보 같이 2년이라는 시간을 견딘 나를 탓하게 되었습니다. 이직이 어려우니 조금만 더 견뎌보자 라는 바보 같은 선택을 했던 과거의 제가 답답하고 미워졌습니다.

한 번씩 뉴스에 나오는 직장인 괴롭힘 직장 내 가스 라이팅 기사를 보면 답답함을 느낍니다. 가해자들은 본인들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카리스마 있는 리더라고 생각할 확률이 큽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저는 이직이 아니라 퇴사를 택했을 겁니다. 회사를 알아보며 참고 견딘 그 시간이 나에게 이렇게 깊은 생채기를 나 길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돈이 없어 힘든 쪽을 택하겠습니다.

지금은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이 있지만 수많은 회사에서 직장상사의 괴롭힘. 가스 라이팅은 예사롭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런 비상식적인 행위를 행하는 사람들이 마땅한 벌을 받고 회사에서는 오로지 내 일만 집중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그런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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